명당 돌혈(乭穴)에 조성한 태실(胎室) 원형복원해야

김민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9/10/16 [08:04]

명당 돌혈(乭穴)에 조성한 태실(胎室) 원형복원해야

김민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09/10/16 [08:04]
조선 왕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작은 백자로 된 내호(內壺)에 넣어 산실(産室)안에 길한 방향으로 보관하여 두었다.내호는 태 안 항아리,내항(內缸)이라고도 하며 외호에 비하여 홀쭉하게 생겼다.길일을 택하여 태를 보다 큰 항아리인 외호(外壺)에 넣어 밀봉하였다.외호는 태 밖 항아리,태호(胎壺),태항(胎缸),외항(外缸)이라고도 부른다.

헌 동전 하나를 글자가 적힌 부분이 위가 되게 작은 내호 바닥 중앙에 깔고 여러 번 씻은 태를 그 위에 넣고 기름 종이와 남색 비단으로 항아리 입구를 덮고 빨간 끈으로 밀봉하여 더 큰 외호에 담는다.항아리 사이를 내호와 외호가 움직이지 않도록 솜으로 채워 고정시킨 후 습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기름종이로 싼 후 마개와 뚜껑을 닫아 막는다.

왕자가 출생하면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설치하고 길일(吉日)·길지(吉地)를 택하여 안태사(安胎使)를 보내 태를 묻었으며 태실(胎室)은 대석(臺石)·전석(磚石)·우상석(遇裳石)·개첨석(蓋檐石)으로 구성되었다.관찰사(觀察使)가 왕·왕비·왕세자(王世子)의 태실을 살피게 하였으며 대왕태실의 경계는 300보(步)로 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다.

왕릉은 도성 4대문 100리 안에 조성되었지만 태실은 왕실과 백성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려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국의 명당을 찾아 조성되어 왕실은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태실의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태실로 정해진 명당들은 거의 무쇠솥을 엎어 놓은 형상,혹은 바다 위에 거북이가 떠있는 형상인 돌혈(乭穴)에 속한다.

경기 남양주,광주,연천,포천,가평,강원 원주,영월,경북 영천,김천,울진,구미,상주,예천,성주,경남 마산,양산,사천,하동,부산,충북 충주,청원,충남 서산,보은,금산,홍성,부여,공주,전북 완주,광주 등 명당을 찾아 반드시 들판 가운데 둥근 봉우리를 선택하여 그 위에 태를 묻고 태봉(胎封)이라 하였고 농사를 짓거나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했다.

왕과 왕자,공주 모두 태봉이 있으며 왕실에서 왕족의 태를 전국의 명당을 찾아 묻은 것은 태를 좋은 땅에 묻어 좋은 기를 받으면 그 왕족이 무병장수하여 왕위의 무궁한 계승에 기여할 것이라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에 따른 것으로 사대부들의 명당을 빼앗아 태실을 만들어서 왕실에 위협적인 인물의 배출을 막으려 했다.
원본 기사 보기:pluskorea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네트워크배너
서울 인천 대구 울산 강원 경남 전남 충북 경기 부산 광주 대전 경북 전북 제주 충남 세종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