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宮) 궐외각사 후원 터 사적지정해야

김민수 칼럼 | 기사입력 2009/10/07 [12:13]

궁(宮) 궐외각사 후원 터 사적지정해야

김민수 칼럼 | 입력 : 2009/10/07 [12:13]
조선은 국왕이 공식으로 활동하며 생활하는 법궁(法宮)과 화재나 의외의 재난에 대비하여 만든 이궁(離宮)의 양궐 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국왕과 왕세자(王世子)가 비(妃),빈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특별히 마련한 별궁(別宮),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잠저(潛邸),왕이 행사에 참석할 때 임시로 머문 행궁(行宮)이 있었다.

법궁 경복궁(景福宮)은 의례와 조회(朝會)를 하는 정전 근정전(勤政殿),왕의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 사정전(思政殿),대전 강녕전(康寧殿),중궁전 교태전(交泰殿),동궁전 자선당(資善堂),세자가 학문 강학하는 비현각(丕顯閣),세자의 사무 공간인 계조당(繼照堂),대비전 자경전(慈慶殿),집현전(集賢殿) 수정전(修政殿)이 있다.

북편에는 고종이 친정을 한 건청궁(乾靑宮),사신 접대,서재로 쓰인 집옥재(集玉齋),내전 흥복전(興福殿),만경전(萬慶殿),집경당(集慶堂),왕의 어진(御眞)을 모신 선원전(璿源殿), 왕 장례시 관을 모셔두는 빈전 태원전(泰元殿),왕의 신위(神位)를 모셔두는 혼전 문경전(文慶殿),국상시 사용하는 회안전(會安殿)이 있다.

후원은 녹산(鹿山),향원정(香遠亭)과 신무문(神武門) 북편에 있는 오운각(五雲閣),옥련정(玉蓮亭),농사 기원하는 경농재(慶農齋),고종이 신하에게 칙지(勅旨)를 내린 대유헌(大有軒),문과 시행하는 융문당(隆文堂),무과 시행하는 융무당(隆武堂),과거 시행, 군사 훈련하는 경무대(景武臺) 등 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의공간인 빈청(賓廳),대청(臺廳),정청(政廳)과 어명 전달,관보 발행하는 승정원(承政院),실록을 편찬하는 춘추관(春秋館),국정 자문,간쟁하는 홍문관(弘文館),문서 제술,사초 기록하는 예문관(藝文館),어제 어필 보관,학술 연구하는 규장각(奎章閣),5위(五衛) 통솔하는 5위도총부(五衛都總府),국왕 학습,국사 논의 위한 경연(經筵)시행하는 경연청(經筵廳),임금의 의복과 궁내의 재화(財貨)·금·보화 등을 관리하는 상의원 (尙衣院)의 궐내각사가 있다.

궐 밖에는 국정 총괄,관청 통제하고 의견 조율하는 의정부(議政府),어명에 의한 수사 및 심판, 탄핵에 대한 판결하는 의금부(義禁府),관직 및 법령 서경, 관리 탄핵,감찰하는 사헌부(司憲府),관직 및 법령 서경, 간쟁하는 사간원(司諫院),직무 없는 당상관 우대하기 위한 중추부(中樞府),음식물 감독,왕명 전달,궐문 수직(守直),청소 등 궐내 잡무보는 내시부(內侍府),사직단(社稷壇)을 관리하는 사직서(社稷署)가 있다.

군무를 통괄하던 삼군부(三軍府),도성과 외곽지역 방어하는 5군영(五軍營),왕의 계보 초상화 보관,왕과 왕비의 의복 관리한 종친부(宗親府),녹찬(錄撰)과 종실(宗室) 사무,왕실 족보 연구하는 종부시(宗簿寺),종친과 왕의 외척,왕실 외손을 예우하는 돈녕부(敦寧府),공신을 우대하기 위한 충훈부(忠勳府),왕이나 왕세자의 사위가 속한 의빈부(儀賓府),종묘와 사직의 제향과 의시(儀諡)도 맡았던 봉상시(奉常寺)가 있다.

문관 인사,공신과 종친 관리하는 이조(吏曹)와 호구,인구 파악,통계 기록,재정 출납하는 호조(戶曹),교육,외교,문과 시행하는 예조(禮曹),무관 인사,무과 시행하는 병조(兵曹),법령 담당,상급 재판 심리하는 형조(刑曹),모임 인허가 및 평가,물품 관리,토목 공사를 담당한 공조(工曹),서울의 수비를 담당하고 군인을 훈련 감독하는 훈련도감(訓練都監),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승문원(承文院)이 있다.

대한 황궁 경운궁(慶運宮)은 조하(朝賀)를 받는 정전 중화전(中和殿),고종황제의 침전 함녕전(咸寧殿),고종황제 등극의례를 봉행한 태극전(太極殿),왕의 어진을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황실 도서관 중명전(重明殿),명성황후의 빈전과 혼전 경효전(景孝殿),순명황후(純明皇后)의 혼전(魂殿) 의효전(懿孝殿),후원 상림원(上林苑),황실 사무,근대적 광무개혁 추진한 궁내부(宮內府),최고 군통수기관 원수부(元帥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궐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 이궁(離宮)으로 조성되었으며 공식 의례와 조회(朝會)를 행하는 정전(正殿) 인정전(仁政殿),왕이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便殿) 선정전(宣政殿),왕의 개인 생활,침식 공간인 대전(大殿) 희정당(熙政堂),왕비가 생활하는 중궁전(中宮殿) 대조전(大造殿),세자가 생활하는 동궁전(東宮殿) 중희당(重熙堂),세자 학문 강학하는 성정각(誠正閣),세자의 서재 승화루(承華樓),세자의 사무 공간 시민당(時敏堂),부속 건물 진수당(進修堂)이 있다.

내전 경훈각(景薰閣),보경당(寶慶堂),낙선재(樂善齋),석복헌(錫福軒),수강재(壽康齋),왕의 어진(御眞)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선원전 재실 양지당(養志堂), 대비전(大妃殿) 만수전(萬壽殿),부속 건물 영모당(永慕堂),연회 공간 영화당(暎花棠),서재 기오헌(寄傲軒),후원은 태극정(太極亭),소요정(逍遙亭),취한정(翠寒亭),농산정(籠山亭), 취규정(聚奎亭),부용정(芙蓉亭),애련정(愛蓮亭),청심정(淸心亭),승재정(勝在亭),존덕정(尊德亭) ,관람정(觀纜亭),농수정(濃繡亭)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경궁(昌慶宮)은 의례 공간인 정전 명정전(明政殿),국왕 사무 공간 편전 문정전(文政殿),강학 공간 숭문당(崇文堂),중궁전 통명전(通明殿),대비전 자경전(慈慶殿),세자 강학 공간 신독재(愼獨齋),내전 환경전(歡慶殿),경춘전(景春殿),통화전(通和殿),양화당(養和堂),연희당(延禧堂),건극당(建極堂),외원(外苑) 함춘원(含春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궐 경희궁(慶熙宮)은 공식 의례와 조회(朝會)를 하는 정전(正殿) 숭정전(崇政殿),왕이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便殿) 자정전(資政殿),왕의 개인 생활,침식하는 대전(大殿) 융복전(隆福殿),왕비가 생활하는 중궁전(中宮殿) 회상전(會祥殿),내전 집경당(集慶堂),흥정당(興政堂),경륜재(經綸齋),위선당(爲善堂),상휘당(祥暉堂),함춘헌(含春軒),안희합(安喜閤),지효합(至孝閤), 내전 별실 덕유당(德游堂),덕유당 부속 공간 사물헌(四勿軒),내전 하례(賀禮) 공간 광명전(光明殿)이 있다.

왕의 어진(御眞) 봉안하는 태령전(泰寧殿),왕의 신위(神位)를 모셔두는 계상당(啓祥堂),대비전(大妃殿) 장락전(長樂殿),대비전 부속 건물 봉상루(鳳翔樓),용비루(龍飛樓),대비전 별당 어조당(魚藻堂)과 동궁전 내당(內堂) 즙희당(緝熙堂),양덕당(養德堂),동궁전 부속 건물 중서헌(重書軒),동궁전 별당 경선당(慶善堂),세자 사무 공간 경현당(景賢堂),세자 서재 문헌각(文獻閣),세자 강학하는 존현각(尊賢閣),혼천의(渾天儀) 설치한 규정각(揆政閣),휴식 공간 청한정(淸閒亭),춘화정(春和亭)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1615년 광해군이 경운궁(慶運宮)에서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移御)한 이후 창경궁(昌慶宮)의 중건 공역(工役)이 진행되고 있는데 풍수승(風水僧) 성지(性智)에 의하여 인왕산 왕기설(王氣說)이 강력히 제기되었고 광해군은 인왕산의 왕기를 누르기 위해 1616년 인왕산 아래에 인경궁(仁慶宮)을 창건하였다.

필운동,누하동에 있었던 인경궁은 새로 영건하는 것이었으므로 많은 인력과 재력이 소모되었고,경덕궁의 영조(營造)가 병행된 관계로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었지만 광해군은 공사를 강행하였다.인조 10년 인목대비가 인경궁 흠명전(欽明殿)에서 서거하였으며 인조 26년 인경궁의 재와(材瓦)로 홍제원(弘濟院)을 지었다.선왕(先王)의 후궁(後宮)들이 거처하는 자수궁(慈壽宮)은 옥인동에 있었다.

안동별궁(安洞別宮)은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비(妃)인 명성왕후를 맞아들이기 위해 신축한 건물로 안국동에 있었다.창의궁(彰義宮)은 영조의 잠저(潛邸)로 통의동에 있었으며 숙종 45년 경의군(敬義君)이 탄생한 곳으로 궁 안 장보각(藏譜閣)에 영조의 영정을 봉안하였다.예종(睿宗)의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사저 수진궁(壽進宮)과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의 용동궁(龍洞宮)은 수송동에 있었다.

장의동본궁(壯義洞本宮)은 태종,세종의 잠저로 청운동에 있었으며 어의궁(於義宮)은 사직동에 있던 궁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곳이다.용흥궁(龍興宮)은 효제동에 있던 효종의 잠저였으며 인조·현종·숙종·영조·순조 대에 걸쳐 왕후의 가례(嘉禮)가 거행되었다.이현궁(梨峴宮)은 인의동에 있던 광해군의 잠저이며 운현궁(雲峴宮)은 고종의 잠저이며 흥선대원군의 저택이었다.

조선 초 조성된 행궁은 풍양궁(豊壤宮),온양행궁,초수행궁,이천행궁이 있고 인조,숙종은 남한행궁,북한행궁,강화행궁,전주행궁,격포행궁,월미행궁을 조성하였으며,정조가 화성행궁과 노량행궁,시흥행궁,과천행궁,사근참행궁,안양행궁,안산행궁을 조성하였다.

정조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능행길에 들렀던 시흥행궁(始興行宮),화성행궁(華城行宮),내란이나 대외적인 침략에 대비한 남한행궁,북한행궁,강화행궁,전주행궁,월미행궁,격포행궁,휴양(休養)목적의 온양행궁,초수행궁,이천행궁이 있었다.
 
한민족운동단체연합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네트워크배너
서울 인천 대구 울산 강원 경남 전남 충북 경기 부산 광주 대전 경북 전북 제주 충남 세종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