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한글성서 번역자 곡성 옥과 출신 이수정(李樹廷) 선생

최진경 기자 | 기사입력 2011/11/24 [18:00]

최초 한글성서 번역자 곡성 옥과 출신 이수정(李樹廷) 선생

최진경 기자 | 입력 : 2011/11/24 [18:00]
최초 한글성서 번역자 곡성 옥과 출신 이수정(李樹廷) 선생. 그는 누구인가?
 
1842년(헌종 8)∼1886년(고종 23). 최초의 한글성서 번역자의 한사람. 전라남도 곡성 출신. 병규(秉逵)의 아들. 고종 친정 후 유력자 민영익(閔泳翊)과 깊은 교분을 맺고 있었고, 특히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충주까지 피신시킨 공으로 왕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881년 신사유람단원이었던 안종수의 권유와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 보호의 공로 등으로 1882년 수신사 박영효(朴泳孝)의 수행원자격으로 일본에 갔다.
 
일본 체재 중 안종수의 소개로 당대 일본 대표 농학자이자 기독교인이었던 쓰다(律田仙)와 교분을 가지고 근대적인 농법·법률·우편제도 등을 배우는 한편, 그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쓰다의 방에 걸려 있던 한문 족자 산상수훈(山上垂訓)에 감명을 받고 쓰다의 인도로 한문성서를 탐독하면서 기독교에 귀의를 결심하였다.

같은 해 성탄절 날 쓰다의 안내로 기독교예배에 처음 참석한 뒤 1883년 4월 29일 일본주재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 녹스(Knox, G. W.)의 입회하에 동경 노월정교회(露月町敎會)에서 목사 야스가와(安川亭)의 집례로 세례를 받았다.
 
▲ 최초 한글성서 번역자 곡성 옥과 출신 이수정(李樹廷) 선생. 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이수정선생이 한복을 입고 있다.     © 최진경 기자

 
그는 일본에서 세례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 개신교신자가 되었다. 세례를 받은 뒤 〈요한복음〉 13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신앙고백서’를 발표함으로써 윤치호의 ‘신앙고백서’와 함께 한국 기독교 초기신자의 신앙양태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한글성서 번역사업으로 일본주재 미국 성서공회 총무였던 루미스(Loomis, H.)의 권유와 협력에 따라 먼저 한문성서에 토를 단 '현토한한신약전서 懸吐韓漢新約全書'를, 이어 순한문성서인 '신약마가젼복음셔'를 간행하였다.

이 한글성서가 바로 1885년 4월 처음 입국한 미국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 H. G.)와 아펜젤러(Appenzeller, H. G.)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밖에 몇 편의 교리서번역과 한국문학과 천주교관계 저서와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편, 1883년 12월 13일 미국 발간 선교잡지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한국의 선교를 호소하는 글을 기고함으로써 외국선교본부에서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1884년 7월 김옥균(金玉均) 등과 접촉시켜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 맥클레이(Maclay, R. S.)의 입국을 실현시켰으며, 1885년 1월 일본에 도착한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게 내한에 앞서 간단한 한국말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 개신교 수용에 교량적 구실을 다하였으나 갑신정변의 실패로 귀국 후 불우한 생애를 마쳐야 하였다. 1886년 귀국한 뒤 수구파의 노여움을 받았으며, 결국 음모에 휘말려 귀국 직후 처형된 것으로 전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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