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대합실”

허 익 구(논설주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김동수 기자 | 기사입력 2015/03/11 [01:42]

“공항대합실”

허 익 구(논설주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김동수 기자 | 입력 : 2015/03/11 [01:42]
▲ 경남 과기대  허익구 교수  

고등학교 동기들과 해외 나들이를 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가끔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친구들끼리만 모이는 것이 무언의 규칙이 되어버렸다.


그 동안 몇 번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부부동반의 결과는 불편함만 안겨줄 뿐이었다. 수 십 년을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어도 우리들끼리 만나면 언제나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배우자들이 같이하면 분위기는 어색하기만 했다.


하기야 부인들은 고교시절 격이 없이 지내던 우리들의 모습을 알 리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친구들 까지도 부부동반을 하면 하나같이 불편해하는 표정들이었다.


고교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회합의 의미가 상실된다면 차라리 우리끼리만 모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 한 것이다.


어느 누가 앞장서서 주장한 바도 없이 이심전심으로 그렇게 된 걸 보면 친구들의 마음도 하나인 같았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순수한 뜻을 부부라 할지라도 깨뜨릴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모임에도 여느 모임과 다름없이 회칙이란 것이 있지만 그것은 있으나 마나다. 몇 개월간 불참을 하거나 회비를 미납하면 재명이라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 그런 이유로 재명을 거론한 적은 없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회비만 보낼 뿐 월례회에는 거의 참석 하지 못했다. 모임을 할 때쯤 전화를 걸어 나도 지금 참여중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안부를 묻곤 했다.


전화기를 돌려가며 한마디씩 던지는 친구들의 음성을 들으면 세월이 흘러도 우리들 사이에는 달라진 것이 없음을 느꼈다. 그럴 때 마다 고향이 더 그리워졌고 내가 돌아 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 흐뭇해지곤 했다.


김해 국제공항에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나는 대합실 2층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다림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속의 기다림은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러나 가야할 아름다운 목적지가 있고 다시 돌아올 보금자리가 있다면 기다리는 시간도 설렘이 있는 즐거운 여행의 한 부분인 것이다.


공항대합실 여행객들의 표정은 밝고 들뜬 모습이다. 가방이나 옷차림에서 홀가분한 자유인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우리는 특별할 것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얽매여 어쩌면 로봇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며칠만이라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낯선 곳을 떠돌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힘든 일도 아닌 지극히 소박한 소망을 이룬 듯한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한 순간이다.


버스가 도착하고 한 무리의 단체 여행객들이 내리면 공항대합실은 일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될 만큼 왁자지껄하다. 도착인원을 점검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명단을 들고 출석을 부르기도 하고, 짝을 정해 스스로 점검하도록 하기도 한다. 인원 파악이 끝나면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안내인의 깃발을 놓칠세라 바쁘게 따라 가는 모습은 관광지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이다.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온 모습을 똑 같이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순간의 목표물은 오로지 깃발일 뿐이다. 개인적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만이 올바른 길이며 전체질서를 흩트릴 수 있는 개인행동은 잘못된 일이다. 오로지 안내자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우리가 추구할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그 길만이 성공으로 가는 첩경이기에 노예처럼 말없이 따라가지 않았던가. 하나씩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어진 그 즈음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고 내가 실수를 해도 그냥 웃어버리고 마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림을 즐기는 이 여유의 맛을 왜 진작 몰랐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기다림에 속으며 살아온 것 같다. 한 가지 일을 끝내고나면 또 다른 일들이 때맞추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만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힘든 일은 없겠지 했던 그 고비도 삶이란 여정속의 한 가지 일에 지나지 않았다.


출입국 사무소에 근무했던 한 친구는 자기가 일했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정든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이젠 방관자가 된 듯 느긋한 모습은 여유라고하기엔 쓸쓸함이 묻어있다. 나의 경우라 할지라도 퇴임할 때의 모습은 당당할 수는 있어도 못 다한 일들의 아쉬움으로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짐을 다 보내고 공항검색대를 지나 출국수속을 마친 후 다시 비행기 탑승구 쪽으로 갔다.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여기서 또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한다. 언제 어디를 가도 기다림의 시간은 항상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속에는 기다리는 일만큼 일상적인 것도 없는 것 같다.


초조하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려온 시간들,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힘든 시간이 있는가 하면, 언제쯤이면 내 차례가 올까 하며 기다려온 애타는 시간들도 있었다. 모든 일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더러는 스치고 더러는 생채기를 내는 일이 있어도, 적당한 때에 적절하게 아물어 가며 지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같은 학교에 입학을 하고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지만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갔다. 회비만 보내던 친구들이 모임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지 않았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아이들이 출가를 하고, 하나 둘 퇴임을 하면서부터 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을 만난다 해도 거창한 일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가벼운 대화를 나누거나, 목적지로 가기위해 잠간 쉬고 있는 대합실에서의 만남과 같은 것이다.


이제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다.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비행기를 타도 마찬가지다. 신문을 보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는 사람, 같은 시간동안 갖가지 형태의 기다림 속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이다. 잠시 쉬어가며 다시 돌아갈 곳을 기다리고 있는 대합실의 대기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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