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350만 전남 도민들의 학살명령이 떨어졌다?

김동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2/12/20 [09:21]

광주사태, 350만 전남 도민들의 학살명령이 떨어졌다?

김동문 논설위원 | 입력 : 2012/12/20 [09:21]
두 장교와 당번병이 자리를 비우자 어제 읍내에서 난무했던 광주의 유언비어를 정리해 보았다.

"전두환이 보낸 경상도 출신 공수부대가 광주 시가지를 장악하고 총검으로 시위 군중을 무차별 학살하며 도청앞 금남로 거리에 장갑차가 나타나 시민들을 오징어처럼 깔아뭉개며 베레모를 쓴 공수부대가 총검으로 임산부의 배를 갈라 죽이는 만행과 함께 이미 3백50만 전남도민들의 학살 명령까지 떨어졌다"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다며 피신 온 방위병과 예비군들이 전한 내용들이라고 알려준다.

병력과 무기도 없이 저들이 공격을 해 온다면 부대사수가 어렵다며 월남전을 경험한 내 의견을 듣기위해 부하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나는 그가 전해 준 유언비어들이 100%날조 되었다고 판단했다.

10.26(박대통령시해)과 12.12사태로 이어진 건국이후 초유의 변란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시점에서 특정지역에 내려진 학살명령과 영호남 지역감정을 이용, 경상도 출신으로 편성된 공수부대를 투입했고 총검으로 임산부까지 죽인다는 말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며 이는 사태를 주도 한 특정세력들이 조직적으로 유포시킨 유언비어로 단정했다.

그의 손을 붙들며" 자네는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향토 예비군부대의 지휘관이네 지금 경찰서 가 피습되고 많은 양의 예비군 무기마저 탈취 당한 마당에 이제 남은 건 이 부대 하나뿐이네 함께 부대를 지키세" 만약 전방부대 병력이 소요사태 진압에 동원된다면 3.8선이 위험하네다"꼭 쥐었던 그의 손을 놓고 보니 문득 월남패망의 교훈이 되살아난다.

정 소령은 자신의 부대로는 현실적 방어가 어렵다며 병력이라야 고작 현역 16명에 피신온 방위병과 예비군 그리고 휴가 장병들이 7명 피신해와 총원 60여명이 전 부대 병력이며 M16소총 16정 칼 빈 소총 30여정에 탄약은 비상 휴대용 뿐이라 얼마 되지도 않는다며 고충을 털어 놓은 체 부대를 사수하려는 결심이 자꾸 무너져 간다며 안타까워 한다.

분대규모의 병력과 무기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며 지역 예비군대대의 위치에서 상급부대의 작전명령도 없는 상태에서 부대사수를 요구 하는게 무리한 욕심같이 느껴진다,

사무실 벽시계가 20일 정오를 알린다.

이때 자리를 피해있던 인사계 주임상사가 식량이 떨어졌다고 알려준다. 지역 예비군 훈련부대라서 3일 분량의 식량이 피신 온 예비군과 방위병 등 60여명의 취사로 아침에 바닥이 난 모양이다. 대대장의 얼굴표정이 굳더니 나를 쳐다보며 어찌 하겠느냐고 묻는다. 식량마저 바닥났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다.

"버티는데 까지 버티며 부대를 사수하세" 저들의 집결지가 나주인데, 대대마져 철수 한다면 11개시군의 관문인 이곳(나주)에서 광주로 진격할 경우 실로 엄청난 사태가 예상된다.

나주는 전남 서남부 11개 시군의 교통요지로 남으로 신 안, 목포, 함 평, 무안 이 광주진입 관문이며 서남쪽으로는 영암, 강진, 장흥, 완도, 진도, 해남에서 광주를 향하는 교통 중심지에 있다. 만약에 이부대가 철수한다면 저들이 탈취한 총기류와 차량들의 보급로가 되어 광주는 폭동의 화약고 가 되는 셈이다.

비장한 각오로 "정 소령, 나와 운명을 함께 하세". 월남전에서 살아 온 목숨 내 나라에서 값있게 던지려네" 그는 내 두 손을 움켜지며 눈시울을 적신다.

나는 당번병 이 가져온 군복을 입었다 계급장 없는 군복을 월남전 이후 14년 만에 다시 입은 셈이다. 피신 길에 신분증 대용으로 가져온 "방위 위원"의 명찰을 달고 그가 건네준 칼 빈 소총과 탄 창 6개를 허리춤에 끼웠다.

20일 3시 대대장실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나주읍 예비군 1중대장인 후배 0모 예비역 대위의 전화다. 읍내 정보가 없는 터에 그의 전화는 큰 힘이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중대장이 전해준 읍내의 사정은 예외로 심각했다.

어제 나주 경찰서 가 철수 한데 이어 오늘은 군청과 모든 공공 기관이 문을 굳게 닫은 체 읍내 상가들도 철시한 체 광주 .목포 간 도로는 차량 물결로 장사진을 이룬 체 영암. 목포. 무안 함평. 장흥등 4시간 거리인 멀리 진도 시민 군 표시를 한 버스와 트럭들이 집결 한다는 소식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광주아시아 방위 산업체에서 제작된 군용 트럭까지 등장하고 무장 폭도들이 읍내를 점거 한 체 거리 곳곳에서 피난 행렬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은 바닥나고 병사들은 웅성거려..

그리고 광주 방위산업체에서 제작 되는 장갑차와 군용차량들이 출연 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들이 광주로 집결 할 경우 광주는 최악의 사태로 번질 것이 예상된다.

20일 오후 6시 식량이 바닥나자 취사병까지 빈총을 쥐고 철조망 경계 근무에 나섰는데 기다리던 선배의 소식은 없이 두 끼를 굶은 예비군 과 방위병들이 배 고품을 호소하고 있다.

한조각의 빵과 라면을 구하려고 동료 이 차장에게 전화를 했다. 피난 온 옆집 다방 아가씨에게 빵과 우유 라면을 구해 달라고 당부하자 이 차장은 읍내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아 빵 한조각도 구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들은 꼼짝없이 굶주림 속에 부대를 사수해야 할 판이다.

철조망 경계근무를 하던 방위병과 예비군들의 웅성거림에 현역들까지 동요된 체 2백여 미터 전방 흥룡 부락에 진을 치고 있던 폭도들은 고압 철탑을 음폐물로 공포를 쏘아대며 해질 무렵까지 우리들을 위협하고 있다. 연대본부와 연락할 무전기는 교신이 두절 된지 3일째가 된다,

패기 왕성하던 김중위와 이 중위의 표정마저 어두워진다,

21일 자정 을 알리는 벽시계소리에 정 소령이 월남전 이야기를 주문한다. 그는 푸른 제복을 입은 동료며 연장자인 내게 긴장과 공포의 한 순간을 잊기 위해 월남전 이야기를 주문한 모양이다.

경계 순찰은 두 장교가 30분 간격으로 교대 하면서 나는 14년전 월남전 이야기를 시작했다.

1966년 9월 만기 전역 4개월 을 앞두고 월남전에 지원했다. 그해 가을 천막으로 가려진 수송차량에 실려 삼팔선을 경계에 둔 강원도 화 천 옴리 훈련장 에서 고달픈 특수 훈련을 받았다.

유격훈련과 함께 정글전 에서 살아남기 위한 "담력훈련"등 6주간의 강훈련이 계속되자 날이 새면 탈영병이 속출하는 피나는 훈련을 마치고 춘천역으로 이동했다.

수송 중 우렁차게 불러대던 군가는 춘천역 광장에 들어서자 춘천 여중학생들이 부르는 환송 가 와 태극기 의 물결이 시야 에 들어오며 "이기고 돌아오라 맹호부대 용사들아"를 외치던 여학생들이 환송가에 우리는 눈시울을 붉혔다.

밤새 달리던 증기 기관차는 새벽녁, 부산항 3부두에 도착했고 우리들을 기다리는 거대한 미군 수송선 이 웅장한 자태를 내 보이며 수많은 환송 인파가 뱃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1만5천톤급 수송선에 1천5백 여명의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용사들의 승선이 시작되었다.

 환송 인파와 태극기의 물결 속에 3군 의장대의 연주가 3부두를 진동한다.

"맹호는 간다" .백마고지 용사들아"...이기고 돌아오라".

마지막 뱃고동과 함께 아리랑. 아리랑 아 나 리 오....가 울려 퍼지자 병사들의 눈언저리가 붉어 온다.<6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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