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반란의도시(7회)

21일 오후 3시 부대방어를위한 "공중발포 허용"

김동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2/12/24 [11:08]

(광주사태)반란의도시(7회)

21일 오후 3시 부대방어를위한 "공중발포 허용"

김동문 논설위원 | 입력 : 2012/12/24 [11:08]
이때 철조망 경계 근무를 하던 방위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소요 사태의 와중에 부대 에 들어온 걸 후회하는 불평 이다.

20대 한창 젊음들이 두 끼를 굶고 실탄 없는 빈총으로 경계 근무를 하는데 그쯤의 불평은 당연한 일이다. 벽시계가 20일 새벽 한시를 알려 준다 방위병과 예비군들의 노골적인 웅성거림에 불안하고 초조 하다. 오늘밤으로 꼬박 세끼를 굶게 되는 병사들의 볼멘소리에 쌀 한줌을 구 할 길이 없자 정 소령은 장병들의 볼멘소리를 잠시나마 잊고 싶다며 월남전 이야기를 계속해 달라고 한다,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의 1500여명을 태운 미군 수송선(골든호)은 남지나해를 거쳐 7일간의 항해 끝에 월남의 항구 도시 퀴논항에 도착했다.

이국 땅에 첫 발을 내 딛는 순간 파병 교육 중에 귀담아 들었던 상하의 나라 월남의 역사가 떠오른다. 교육시간에 배웠던 월남, 마치 우리나라와 일란성 쌍둥이 처럼 역사와 문화를 지닌 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우리가 일제 36년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역사처럼, 이 나라도 50여년동안 불란서 식민 통치를 격었으며 남. 북으로 조각난 체 북쪽은 공산 정권인 호지명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습들이 우리와 너무 닮은 셈이다.

6.25동란 때 우리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서울 수복과 함께 미군들을 따라 다니면서 그들이 나눠주던 과자와 껌들을 구걸하던 모습들이 어쩌면 이렇케 똑 같을까? 허기진 터에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입가에 군침이 돈다.

벽시계가 21일 새벽을 알리고 새벽 동이 떠 오르자 인사계가 아침 끼니 걱정을 한다. 60명의 식구들이 두 끼와 두 밤을 뜬눈으로 세운 셈이다.

대대장이 노상병을 향해 "무전을 잡아라! 식량 지원이 없으면 부대를 철수하는 방 법 뿐이다" 무전병의 익숙한 손놀림에도 무심한 무전기는 삐삐 신호음만 들릴 뿐 응답이 없다.

절박한 그에게 "인간이 물만 마시고 살수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탄광에 매몰된 광부가 15일동안 갱 속에 같혔다 구조된 광부 이야기도 있네"

우리도 월남에서 작전 중 식수가 떨어져 2.3일을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때가 있었다네" 우리들은 월남파병이 국가의 부름 이긴하나 가난과 보릿고개를 면하려는 의미도 함께 있었다.

한푼의 달러라도 고국의 부모형제에게 보내려고 고기 통조림마져 버려야 했다. 66년 10월 미국이 월남전에 보급 지원하는 전투식량 씨. 레이션 을 김치 통조림으로 바꿔 주 월 한국군에게 보급지원 하라는 색다른 전언통신의 작전 명령을 받았다

월남에 도착, 한달 만에 십자성부대 사령부로 날라든 작전 명령의 전언 통신문 은 이외로 생소했다. 군수작전 1호 통신문은 사이공의 사령부가 나트랑 의 군수 사령관에게 시달한 전투식량 씨 레이션을 김치 통조림으로 바꾸고 잉여금을 고국에 보내는 방안을 실시하라는 보급작전 명령서 였다.

이어 2호 통신문은, 2.4종 보급품인 정글복, 정글화 를 국산화로 조변할것, 우리부대에 하달 된 작전 명령은 베트공 토벌작전이 아닌 보급작전 명령 1,2호가 시달 되고 취사반 근무 중대 병력과 기동 타격대 1개 소대가 완전 무장으로 연병장 에 집결 방탄복과 수류탄까지 지급 받고 출동 한곳이 바로 부대 인근 8부 능선의 정글 속 늪지대 였다.

부대 영내와 인접한 지역에 배트공이 출몰 했다는게 믿기지 않은터에 지급된 장비도 앰16 소총으로 개인 장비만 지급 되었는데 갑자기 구급차가 등장하고 후송환자 대신 씨 레이션 상자가 실려왔다. 식사 시간도 되기 전 C레이숀이 지급되고 근무중대장 이 대위가 "식사 개시"를 명한다.

모두들 깡통 을 열심히 따는데 "동작 그만" 호령 이 떨어졌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중대장의 표정을 살피자 추상같은 불호령이 또 떨어진다

"김 병장! 최 일병! 통조림 속에 벌레 가 득실 거린다 는 표정으로 손에든 깡통을 버려라" 우리들은 "먹기도 전에 칠면조 와 파인애플 햄 등을 버리라니"중대장의 농담으로 응수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갑자기 중대장 특유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식사 중지 명령 에 불복하는 병사는 군법 회의 에 회부한다."

중대장의 화난 표정에서 농담이 아니란 걸 느낀 병사들은 고기 덩어리가 들어있는 통조림 깡통을 던져 버렸다. 이때 대기 중이던 정훈부 사진 병들이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대고 영문도 모른 체 중대장 의 명령에 따라 고기통조림을 버린 병사들은 저마다 수근 거렸다.

"이게 작전이라고" 고국의 전우 신문에 광고하려고 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풍족하게 지내며 월남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고국의 부모 형제들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 작전일 꺼야." 항상 재담꾼으로 이름난 취사반 서 일병이 한마디 중얼 거린다

"전우신문 에 소개 하려면 왜 먹기도 전에 버려" 즐거운 식사시간에 벌레 씹은 듯 표정은 뭐 꼬" 희한한 작전과 중대장의 "식사 끝" 명령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다음날 작전명령 1호 전통문과 함께 정훈부 사진 병들이 찍어 대던 사진과 함께 보정 참모의 지시를 받았다. "너는 1급 비밀 취급자라는 걸 명심하고 이문서는 1급 비밀이다" 미 군사 고문관에게 사령관이 브리핑 할 내용이다"라며 차트 제작을 당부했다

월남에 도착한 두달만에 군수 담당 업무를 겸하는 바람에 1급 비밀 인가자 라는 중책이 쥐어 졌다. 군대 용어로 군대는 보직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 셈이다.

나는 혼자 자문 자답 하면서 "1급 비밀 취급자라면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어 야지"라며 8절지 차트판에 미제 지펜을 움켜쥐고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 직였다.

브리핑 자료에는 미 국무부와 웨스트 모오렌 주월사령관 그리고 군사 고문관에게 보내는 "보급물자 국산화 조변"의 제안으로 "귀국에서 보급되는 "전투식량 c레이숀"은 동양인의 체질에 맞질 않아 한국군 병사들은 끼니를 굶은체 작전 수행을 함으로서, 향후 보급품은 "김치 통조림"으로 보급해 줄것을 요망 합니다.

얼마후 하와이에서 만들어진 김치 통조림이 캄란만의 미군 보급기지에 도착했으나 국산으로 바꾸려던 2차 조변작전에 장교들은 "미제 고기 통조림을 먹고 사병들은 식초 김치를 준다"는 사병들의 불평이 곳곳에서 터진다. 비밀취급 인가자라는 참모의 엄명으로 전우들의 빗발치는 원성에도 입을 꼭 다물어야 만 했다.

초창기에 지급되었던 미군 씨 레이션은 한끼 분이 1 달러(한화270원)를 웃돌아 1인 한달 급식비가 90불로서 우리가 받던 전투 수당의 두 배가 되는 5십만 달러의 거액을 정글속 전선에서 특별식인 씨 레이션을 내 던지고 식초가 된 김치 통조림 과 돼지털이 든 햄까지 먹어가며 고국의 부모형제들을 위해 국산 조변화 꿈을 이뤄 냈다.

월남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정소령이 냉수 한 컵을 건네 준다. 48 시간을 뜬눈으로 밤 을 세우고 .21일 새벽 을 알리는 동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 한줌의 쌀이 절실하다. 식량 보급 지원 을 위해 수 차례 무전 교신을 했지만 응답이 없다.

시민군의 무장 차량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데도 사단에서는 나주가 광주로 향하는 전초 기지가 된 것을 몰라서 일까? 아니면 서북부 장성. 담양. 화순 지역과 동부쪽 여수. 순천 고흥 보성 쪽의 진압이 더 급박해서 일까.?

무전 교신이 두절된 터라 더욱 불안하다. 대대를 찾아온 이틀째 오전 8시 대대장 실 일반 전화 가 처음으로 울렸다. 잽싸게 수화기를 든 나는 깜짝 놀랐다. 나주 군청 내무과장의 전화다 .

"대대장님 내무과장 이요 군청 직원들은 모두 철수하고 읍내는 이미 치안 부재 상태요"라며 자신도 숙직실 인근에 숨어서 전화를 한다고 한다.

고향 선배인 0과장께 신분을 밝히자 그 역시 크게 놀랜다 .대대장을 바꿔줄 사이도 없이 식량 지원을 부탁했다. 긴박한 사정을 들은 내무과장 은 보내줄 인편이 없음을 걱정하며 최선을 다 하겠다며 통화를 끝냈다.

오늘 점심때까지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60여명의 장병들은 꼬박 하루를 굶는 셈이다. 내무 과장의 식량 지원 여부 에 따라 부대 사수와 철수를 결정해야 하는 절박한 상태에 놓였다. 대대장도 오늘 새벽 철조망 경계를 하던 예비군 과 방위병들의 불평에 이들의 동요 와 부대 이탈을 걱정한다. 빈총을 움켜쥐고 세끼식사도 못한 병사들과 부대를 사수한다는 게 무모한 일 같다.

이때 정문 경계를 하던 현역병이 대대장 실로 달려와 희소식을 알린다. 정문 언덕길로 수레를 끌고 오는 농부를 발견 했다는 낭보와 함께 부대 쪽을 향해 신호를 보내온다 한다.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내무과장이 보내준 식량이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예비군 서너 명을 데리고 수레 쪽을 향해 뛰어갔다.

우리는 구세주를 만나듯 수레 에 실린 혼합 곡 포대를 끌어안고 환호성을 치며 곧바로 취사장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식사 준비를 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대대장 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다. 초여름의 문턱에 선 5월의 계절 탓인지 이틀 만에 시래기국에 식사를 하고 나니 조름이 찾아온다.

이때 고함을 치며 무전 병이 취사장 쪽으로 뛰어온다. "대대장님 대대장님 무전이 잡혔습니다! "무전기를 건네받은 대대장은 "여기는 갈매기 여기는 갈매기" 갈매기 0호다. 긴급 식량 지원 바란다". 급한 나머지 수신 버턴을 누른 체 수없이 되풀이한다. 수 차례나 반복되는 식량지원 요청에 "알았다 오버"라는 한 마디로 교신은 성공 한 셈이다.

군청 내무과장이 보내준 혼합곡 여섯 가마와 연대의 무전 교신이 이뤄지자 부대 분위기는 크게 변했다 철조망 경계를 하던 예비군들이 내 고향 내 고장은 우리 손으로.. .향토 예비군 노래 가락을 힘차게 부른다. 21일 오후 4시 갑자기 부대 앞 폭도들의 진지에서 총성이 요란하더니 부대 상공에서 헬기 한대가 부대 쪽을 향해 날아온다.

폭도들이 쏘아 대는 총알을 피하느라 높이 고공 비행으로 부대 쪽을 향해 접근해 온다. 연병장 상공 에 이르더니 더 높이 고공을 선회하며 부대 앞에서 쏘아 대는 총격으로 착륙을 못한 체 선회를 반복하고 있다.

내무반으로 달려가 하얀 이불시트를 헬기를 향해 마구 흔들어 주었다. 착륙 안전지대의 표시다.수분의 시간이 흐르자 헬기는 서서히 연병장을 향해 내려온다. 연병장은 5백여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헬기에 탑승 한 두 명의 병사가 실어온 보급품을 내리는 사이 대대장과 나는 헬기 쪽으로 다가서자 소령이 조정간을 잡고있다.

헬기는 M60 기관총과 실탄 상자가 내려지고 이륙을 서두는 요란한 엔진음을 내면서 주변이 흙먼지에 시야를 가린다. 나는 대뜸 이륙준비를 서두는 조정 석의 소령에게 이륙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조종사는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이륙을 서둔다.

조정간을 잡고 있던 소령을 향해 칼 빈 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식량을 내려 놓아라"칼 빈 소총을 들이대며 고함을 질렀다.기다렸던 식량대신 기관총과 실탄 상자만 가져온 헬기 조종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본인은 육군 항공대 소속으로 나주대대에 중화기 수송명령만 받았을 따름이라며" 총구를 의식하고 낮은 자세를 취한다. 그는 계급장도 없는 군복차림의 내 모습을 보고 특수부대나 자신보다 상급자로 비춰졌는지도 모른다.

식량 대신 중화기 만 내려진 체 이륙 을 서두는 항공대 소속 조종사에게 잠시 화풀이했던 나는 사과 의 뜻으로 그의 안전 이륙을 위해 양팔 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헬기를 보내고 대대장 실에 들어서니 벽시계 가 오후 5시를 알린다. 나는 정 소령에게 떠도는 유언비어들을 신중하게 정리하자는 의견을 나눴다 세끼를 굶은 우리에게 중화기와 탄약 상자가 헬기에 실려 온 후 "도민 학살 명령"과 "경상도 출신 공수부대의 광주 투입"설의 유언비어들을 확인해야 했다. 설마 공수된 중화기로 발포명령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무기고에서 탈취당한 중화기를 보충해 주는 걸까?

부대 정문에 설치한 기관총을 주시하던 대대장이."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이지만 저들이 쳐들어 온다 해도 발포 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학살 명령이란 유언비어의 진의도 믿을 수 없다"며 부대 철수 의사를 밝힌다. 그의 판단 여부에 따라 60여명 병사들의 생사 여부가가 달려있어 마지막 결정을 해야할 순간이 되었다.

생사 와 관련된 사안을 민간인인 내 조언이 오히려 부담을 줄 것 같아 나는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 후 우선은 떠돌고 있는 유언비어에 대한 진의여부를 파악한 후 "부대 사수와 철수"문제를 결정하자고 제의했다.

수 차례 무전 교신끝에 연대와 수신이 되자 "공격을 받고 있다! "부대 사수 가 어렵다!" 발포 여부를 하달하라" 마치 성난 사자처럼 외친다. 수신 음이 짤막 짤막 이어지더니 부대 방어를 위해 "공중 발포"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교신을 받았다.

21일 오후 3시 "공중발포 허용"의 짤막한 무전 교신을 사태 3일만에 처음 받아본 광주 00사단의 명령이었다. 고립된지 3일째 하달된 "공중발포" 명령에 부대사수의 결심을 갖게 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동안 떠돌던 유언비어들이 사단으로부터 "정면발포 절대 불가, 방어 최후 수단으로 공중 발포 허용" 이라는 무전 교신에서 확인되는 순간 폭동 진압과 부대사수에 확신을 안겨준 셈이다. 정소령은 부대사수의 결심을 다지는 의미로 세 사람의 장교들을 불러 부대 절대사수의 배경 설명을 했다.

지금까지 떠도는 유언비어는 특정 세력들에 의해 조작 전파된 유언비어임이 드러났고 나주지역 방어가 광주폭동을 조기에 진압하는 주요 지점임을 강조하면서 무전 교신 내용 "정면 발포 절대 불가"명령을 부하들에게 알렸다. 

흑룡부락 앞 송전탑 부근에서 요란했던 시위대의 총성이 헬기 출현 후 잠잠해지고 웅성거리던 방위병과 예비군들의 사기가 되 살아난 가운데 밤이 지나고 사태 4일째가 되는 22일 아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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